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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상황] 울타리 너머에도 돌봄이 필요하다(2021년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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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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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호 커버스토리] 노숙인 자활·자립 사회적협동조합 노느매기 박상호 이사장

이름도 모르고 지내던 노숙 유경험자들이, 협동조합 교육을 받으며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되고 자립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 자기만의 길을 찾아간다. 이는 서울 영등포구 마을기업인 사회적협동조합 ‘노느매기’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노느매기는 2013년 주거 취약계층 자립과 자활을 위해 창립된 조직이다. 2018년 별세한 고(故) 김건호 목사 주도로 설립되었다.

현재 노느매기 이사장은 박상호 씨다. ‘하나를 여러 몫으로 나누는 일’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노느매기라는 말처럼, 여러 사람의 몫을 구하고 돌볼 방법을 찾는 게 그의 일이다. 협동조합이 출범한 지 8년이 되면서 눈에 보이는 성과들도 있지만, 그는 노느매기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늘 고민한다.

‘여러 사람’이라는 단위 자체가 성립하기 힘든 이 시기에, 협동조합의 필요를 누구보다 잘 아는 박상호 이사장을 만나 마을 공동체가 그리는 돌봄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도움이 필요하기만 했던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쌍방향의 복지가 필요하고, 이것이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8월 5일 '당산골 문화의 거리'에 위치한 노느매기의 사무실 '공간 1616'에서 진행되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이번 커버스토리 주제가 ‘돌봄’이다. 그동안 다양한 돌봄 영역을 경험해보셨을 것 같은데.

오랫동안 사회복지사로 노숙인 임시 보호시설에서 일했다. 복지사로 일하면서 많은 ‘노숙인’ ‘쪽방촌’ 사람들을 만났고, 이들에게 어떤 돌봄이 필요한지 고민해왔다. 지금은 경제적 취약계층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협동하는 마을기업인 노느매기에서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마을과 지역 안에서 필요한 돌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 노느매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노숙인 임시보호센터 햇살보금자리(이하 ‘햇살’)에 있으면서 무연고자 장례를 접할 일이 종종 있었다. 햇살에 머물던 선생님(센터에서는 센터 이용자들을 선생님으로 부른다 - 편집자 주)이 무연고 장례자가 되기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슬픈 일인데,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더 슬픈 일이다. 노숙인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그냥 옆에 자리를 펴고 자던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없어지는 거다. 김건호 목사님은 그걸 ‘증발’이라 표현했다. 햇살에서 현실을 목격한 김 목사님은 선생님들과 간담회를 열기 시작했다. 시설을 이용하는 이들이 원하는 걸 물어보면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떠올렸다. 무료로 배식하고 임시로 숙소를 제공하는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때 필요한 건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줄 이웃 공동체였다. 김건호 목사님은 노숙인들이 주체성을 갖고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협동조합을 창립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시작한 지 8년 정도 되었는데, 어떤 과정이 있었나.

2018년 노느매기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인증받았다. 그해 가을 조합원의 구심점이었던 김건호 목사님이 돌아가셨다. 그동안 수익사업 발굴보다는 김 목사님의 후원으로 재정을 꾸려왔던 노느매기는 슬픔과 위기가 함께 찾아왔다. 그때 다시 우리가 마을기업, 협동조합이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 노느매기의 수익사업은 무엇이었나.

노느매기는 재활용매장으로 시작했다. 주거 취약계층이 임대주택이나 고시원에 독립해 거주할 때 필요한 물건들을 싸게 사는 데 도움이 됐다. 재생식용유를 활용한 EM(Effective Microorganisms, 유용 미생물) 비누를 만들어 판매했다. 시작할 당시 조합원 전체 규모는 80명 정도였다. 건설일용직 경험자들이 다수인 노느매기는 그 기술을 가지고 집수리가 필요한 저소득, 노인, 1인 가구 등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도 진행했다. 집이 있다고 해서 쾌적함과 존엄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월세든 자가든 임대주택이든 모두 집수리가 필요했다. 노느매기가 집수리라는 돌봄의 방식으로 지역 주민을 만나고 일하게 된 것은 돌봄이 또 다른 돌봄이 되는 순간이었다.
노느매기는 조합원 교육 및 일자리 제공,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사진: 노느매기 제공)
노느매기는 조합원 교육 및 일자리 제공,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사진: 노느매기 제공)


(사진: 노느매기 제공)

- 목적과 계획에 따라 잘 운영되는지 궁금하다.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주거취약계층 문제를 해결하고 조합원들이 마을 구성원으로 존중받는 구조를 만들어낸다는 노느매기의 목적은 지금까지 달라진 게 없다. 이를 위해 조합원 교육 및 일자리 제공, 매장 운영 활동들을 진행해왔고, 2020년부터는 ‘마을관리기업’이 되어 집수리와 소독, 방역 청소 등 마을 관리, 주거 돌봄 서비스, 공구 대여 사업을 하고 있다. 분리수거함 청결 사업, 폐식용유 수거 거점 활동, 택배 수령, 공공 영역 시설물 유지 관리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사진: 노느매기 제공)

- 협동조합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여전히 문제는 많다. 협동조합은 개인의 필요와 욕구가 조합 활동을 통해 발현되고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다. 사회복지사인 조합원이나 자원봉사자의 생각대로 흘러가면 안 된다. 조합원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게 다를 것이다. 그걸 조합원들끼리 나누고 모으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처음에 했던 사업 모델은 수익이 나지 않았다. ‘노숙인’, 딱 이렇게 말하면 후원도 더 받을 것 같은데, 우리 지향점은 예전에 노숙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임대주택이라는 자기 거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를 지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후원에만 의존하기보다 협동조합 정신에 맞게 우리 힘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것으로 수익 구조를 만들려고 했다. 협동조합 취지는 스스로 수익성을 갖추는 것이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이런 구조를 만들면 언젠가 우리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지금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진: 노느매기 제공)

- 설립 당시엔 협동조합을 생소하게 느낀 이들도 있었을 것 같다.

다들 생소하게 느끼는 분위기였다. 협동조합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특징이 총회, 이사회, 실무자 회의 등 회의가 많다는 사실이다. 김건호 목사님은 선생님들 스스로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보는 자리를 비롯해 그걸 좀 더 쉽고 편하게 이야기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셨다. 예를 들면 ‘시설을 이용하면서 느끼는 불편한 점’ 등 여러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이런 게 협동조합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처음엔 선생님들이 말씀을 잘 안 하시려고 했다. 서로 데면데면했다. 나는 누구고, 고향은 어디고 이런 주제들부터 순서대로 말했다. 말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대체로 자기를 표현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서로 관계가 조금씩 쌓이고 난 후로는 대화를 정말 많이 한다. 수다도 그런 수다가 없다.(웃음) 조합원 중 한 사람은 “노느매기에 와서 한 달만 지나면 입이 터진다”고 표현했다. 이전에 각자가 경험했던 복지시설과 다르게 별다른 규제 없이 자유롭고 편하게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 조합원들 의견이 아니라 사회복지사였던 본인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은 어떻게 해결했나.

조합원들 의견을 계속 물어본다. 그리고 조합원들에게 여러 가지를 제안한다. 조합원들이 내는 아이디어가 곧바로 A부터 Z까지 완결 구조를 갖춰서 바로 사업화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그래서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서로 동의를 구하며 힘을 모아 지금의 형태로 진행해왔다. 많은 일들을 만들어내며 여기까지 왔는데, 많은 걸 해봤으니까 이제는 선생님들이 ‘정말 이건 관심을 가지고 해볼 수 있겠다’라고 말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난 지금이라도 조합원들이 원하는 사업이 있다면 그렇게 사업 방향을 다시 설정하겠다고 말하곤 한다.

왼쪽부터 이태훈 이사, 김지만 청년 활동가, 박상호 이사장, 오행진 사무국장, 최민규 조합원. ⓒ복음과상황 정민호

- 현재 조합원은 몇 명 정도 있나.

44명이다. 이 중 취약계층 노숙 유경험 조합원은 절반 정도다. 나머지는 노숙 경험은 없지만 노느매기에 참여하는 실무자나 조합원이다. 우리 조합의 구성 비율을 보면 취약계층이 혼자 오롯이 독립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한 사람이 자립하기 위해서도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격려도 많이 받아야 한다. 우리 선생님들은 큰 실패를 한 번 맛봤기 때문에 다시 자립하기 위해 의지를 발휘하려면 마음부터 추슬러야 한다. 우리 조합원들끼리 주고받는 작은 말 한마디와 도움이 그 계기가 될 수 있다. 노숙인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온 마을의 정성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 이사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노느매기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과 다양한 경로를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조합원들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것이 협동조합 정신에 배치되는 일이라고 느꼈다. 지금은 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서로 의사소통하고 외부와 연대하고 협력하는 데 힘을 쏟는다.

-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는 말이 반복된다.

진짜 중요하다. 누구나 그렇지만 조합 활동을 하다가 실수했을 때도 “그거 봐라. 다음부터 잘하자”고 하는 거랑 “얼마나 안타까우셔요, 애쓰셨는데”라고 말하는 건 전혀 다르다. 진심으로 소통해야 한다.

노느매기의 사무실 '공간 1616'에서 업무 중인 실무자들. ⓒ복음과상황 정민호

- 2019년까지 복지시설에서 일하다가 이제는 사회적협동조합 마을공동체에서 일하게 되었다. 어떤 과정이었나.

사회복지사로 근무했을 당시 상급자는 내게 “고달프게 일하지 말고 일거리를 만들지 마라”고 했다. “사회복지사답게 일하라”는 비판도 들었다. 처음에는 내 업무가 그렇게 이상한지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매뉴얼에 따라 정형화된 일만 하는 것이 사회복지인지 묻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당시 이용자들의 밝은 낯빛을 떠올리며 새로운 경험과 시도를 펼쳐나가고 싶었다. 이용자들과 나들이하러 가고, 함께 영화를 보고, 자조모임을 지원했다. 함께 탁구를 하면서 그들의 사정을 듣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들을 진행했다. 보람 있고 즐거웠지만, 거기까지였다. 주어진 지원금을 효율적으로 보람 있게 쓰는 데는 익숙해졌지만, 이용자가 스스로, 주도적으로 행동해서 만들어지는 과정이 없었다. 나 역시 지원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회복지라는 컨베이어벨트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2012년에는 번아웃을 경험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변화하지 않는 것, 받으려고만 하는 것, 자기 삶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회복지에 회의를 느꼈었다.

- 기존의 복지시설이 놓치는 일을 하기 위해 노느매기라는 협동조합이 존재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 복지서비스 제공 외에도 사람의 필요는 다양한 방향을 향한다. 단선적이지 않다. 내 주변 관계만 봐도 여러 화살표가 존재하고, 그 내용과 성격은 유동적이다. 너무 외로워서 고립감에 몸부림치고 비명 지르는 상황에서 그거 하나만 해결해준다고 바로 삶이 살 만해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태어나서 좋아하는 것을 해보고 싶어하고, 그것을 배우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게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선생님들은 정말 힘든 상황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졌지만,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 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노느매기라는 곳으로 모일 수 있었다.

- 그런 의지를 내기 힘든, 노느매기 조합원이 되지 못하는 분들도 많을 텐데.

그래서 그분들도 조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느매기 문턱을 더 낮추고 싶다. 다만 활동이 현재에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하면서 배우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노동 활동이 연속성을 가지려면 동기가 있어야 한다. 고정적이고 양질의 일자리,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갖게 되면 삶을 계획할 수 있게 된다.

누구나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나 가능성이 필요한 것 같다.
복지시설에서 매일 TV 화면만 보면서 누워있고, 누군가 주는 밥을 먹으며 살고, 다음 날에도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삶. 적어도 그 모습이 선생님들이 원하는 모습은 아닐 것 같다. 복지 혜택을 받으면서도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면 기술을 배우고 선한 의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도움을 받는 자에서 도움을 주는 자로 삶의 길이 다른 쪽으로 열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노느매기는 더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려 한다.

- 지역사회와 마을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

지역사회는 통합 돌봄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삶터나 일터나 지역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내가 사는 삶터 주변에서, 직장 주변에서 통합적인 돌봄이 이뤄져야 한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기관에서 복지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분들이 계신다. 기존의 복지를 넘어서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게 현장에 있는 분들에게 힘 빠지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우려스럽다.

기존의 복지를 놓고 ‘좋다’ ‘나쁘다’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복지는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안전망이다. 다만 사회복지사와 이용자 그 테두리 바깥에도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안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울타리 너머의 돌봄 공동체가 필요하다.

- 앞서 설립자 김건호 목사님을 언급하셨는데, 혹시 신앙을 갖고 있나.

신앙은 없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잘 살아갈 의무를 갖고 태어난다고 믿는다. 만약 그걸 이미 누리고 있다면 혼자만이 아니라 다 같이 향유하는 세상으로 바뀌길 바란다. 나는 교회는 가지 않지만 주변에 좋은 신앙인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의 말을 경청하면서 살아가고자 한다.

진행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