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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산선

[기독공보] 안전사회로 가기 위해 교회는 범사에 감사(勘査)하자(22.12.21.)

Date
2022-12-2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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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이 간절한 생명의 시간에, 이태원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곡소리와 숨죽인 흐느낌이 사무치게 들려온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겪고 누더기처럼 헤어진 유가족의 가슴에 지금도 강생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을 전하고 있는가? 한 해를 돌아보며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성찰하는 이 때에 우리 교회는 사랑과 위로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10월 29일 토요일 늦은 밤, 158명의 생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이 일은 올해 연말로 끝나지 않고 내년에도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론 우리 마음 한편에는 이런 아픔은 묻고, 새해를 맞이하자고 하는 마음이 있다. 이 기원에는 진심으로 유족들이 슬픔에서 벗어나서 일상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슬픔에서 벗어나서 일상을 되찾는 것은 그리 쉬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은 통상 적어도 일 년 이상은 지속된다. 사회적 참사로 가족을 잃은 경우에는 이것을 받아들이기가 더 어렵다. 그래서 강제적으로 강요되거나 외면당하면 더 응어리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고백이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무조건 덮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복기하여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내년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가에 따라서 첨예한 대립과 갈등의 위험사회로 갈 수도 있고, 신뢰와 존중의 안전사회로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번 참사를 목회적으로도 잘 살피고 전 교회가 함께 숙고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겠다.

생명을 지키는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해 사회 전반에 걸쳐서 개선해야 할 것이 많지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 세 가지만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책임자들이 책임을 제대로 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태원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정부 관계자들이 행사의 주최가 없었기에, 책임은 각 개인에게 있다는 식의 표현을 했는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사실 이태원 참사와 같이 너무 큰 일이 일어나면, 당사자와 가족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일에 직간접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처음엔 어떻게든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고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것이 본능적으로 올라온다. 그래서 사건이 일어나고 처음 한 주간 동안 '사고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저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공적 기관의 책임자들의 '그 피하고 싶은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그러나 도리를 아는 사람은 피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희생자를 찾아가서 위로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듣고 최대한 함께 도우려고 한다. 더구나 지자체와 정부는 국민과 지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기에 어떠한 경우라도 참사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계속 집단적인 참사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한마디로 책임회피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책임자 처벌이란 말이 듣기에 참 거북스럽고 너무 남발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진상규명과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책임 전가나 보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관리하라는 국민적 요청이다. 적극적으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책임공직자들이 희생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구체적으로 이런 참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하고 다시 매뉴얼을 철저히 짜고 훈련해나가는 것으로 거듭나야 한다.

두 번째, 우리 안에 깊게 만연한 체념과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를 돌아보면 10.29 참사뿐 아니라, 매일 공사장에서 추락사하고 끼이고 감전되어 죽어가는 사고가 보도되었다. 이 안전 참사들을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예방 대책을 신속하게 세워내지 못한 기업과 책임자들의 무사안일한 태도와 함께 우리 모두의 안전불감증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안전불감증은 단지 어제 별일 없이 지나갔으니 오늘도 별일 없을 거란 생각이 아니다. 안전불감증은 위기의 신호가 계속 울려도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애타는 울부짖음에 귀 닫고 경청하지 않는 것이다. 안전불감증의 더 깊은 곳에는 안전사고에 대해서 하루 평균 몇 명은 죽고 다치니 어쩔 수 없다는 내재된 신념에 가까운 체념이 있다. 그래서 하루에 산재사고로 죽는 사람이 6명꼴이고 1년에 2000명이 넘는 것은 그저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매일 평균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일정하다고 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녹색 교통 유도선이나 가드레일을 잘 설치함으로 사고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게 되었고 사망자 수가 현격히 줄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산재사망을 줄이기 위해 2022년 1월 27일에 시행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대로 현장에서 적용하고, 위험작업에는 2인 1조를 반드시 지키고 안전신호수를 세우는 것과 같은 수칙을 제대로 지키면 사고를 반드시 줄일 수 있고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세 번째, 교회는 생명 안전을 소홀히 하는 관행과 부패에 대한 감사자의 역할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안전이 가장 기본 권리라는 것을 헌법에 명시하고 안전보장 의무를 국가에 부과하는 안전권을 속히 법제화하고 안전인식 교육을 계속해가야 한다. 동시에 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공적인 기관이다. 교회가 교회 안에서 범사에 감사(感謝)만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이윤에 눈이 멀어 생명이 경시되고 소홀히 여겨지는 반생명적인 사회에서 감사(勘査)의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 공장에서 제품이 나올 때 마지막 공정은 감사이고 여기서 불량을 잡아낸다.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살림에 있어서 감사기능이 약하면 반드시 부패와 사고가 일어난다. 엄격한 감사가 중요하다. 이것이 약화되면 사회는 관행으로 움직이고 관료화되고 부패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예언자적 기능을 부여받는 교회는 이제는 범사에 감사할 뿐 아니라 사회를 정화하는 예언자로서 깨어나야 한다. 각 교회가 속한 지역에서 지역사회 안전에 대해 합심하여 기도하고 점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수련회 전에 차량을 점검하고 기도하고 출발하듯이, 새해 출발 전에 개 교회가 지역사회의 생명의 파수꾼으로서 연합하여 생명안전망협의체를 구성하여 안전을 점검·감사하고 녹색유도선 같은 실제적인 대안들을 개발해 나간다면 세상은 교회를 다시 보고 복음에 눈뜨게 될 것이다.

손은정 목사 /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