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을 회복하는 것
- 영등포 산업 선교회 제 1기 현장심방을 다녀와서
김동희(현장심방 1기 참가자)
이번 심방은 나에게 있어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삶의 모색이었다. 신학을 전공한 뒤, 무엇이 의미있는 일일까에 대한 답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이 어떤것일까에 대해서도 명쾌하지 않았다. 더욱이 어떠한 일을 결정지어진다 해도 그것을 지속가능한 사역으로 이끌 열정이 있을 지 의문이었고, 내가 가진 힘에 대한 욕망을 떨쳐 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무엇을 먼저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오산 이주민 센터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목사님께 어떤 청년이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하게 되었는 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목사님 말씀이 충격적이었다. 젓가락 두개를 들더니 먼저 평행하게 11자 형태로 하시곤 자신의 인생과 하나님의 뜻이 이리 평행으로 달려 서로를 알지 못했는데, 살아가며 조금씩 八자 형태로 가까워지더니 어느 한점에서 비로소 그 뜻을 알게 되어지더란다. 그 뜻이 만나니 다시 X자 형태로 그 점을 기준으로 간격이 넓어지면서 자신의 삶에서 그 분의 뜻이 나타나게 되고 확장되어지며 증폭되어 스스로 상상하지도 못했던 많은 일들을 하게 되었단다. 결국 자기비움과 뜻 헤아림이 먼저고, 순수한 사랑이 먼저고, 사람을 향한 그리고 수많은 삶들을 향한 애통함과 공감이 먼저였다. 나를 알아갈 수록 나의 모습을 보면 내가 어떤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커녕 내 스스로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사회의 모순은 얽히고 설킨 실타래와 같아서 어디서부터 그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자본주의와 현대사회는 관계를 산산조각 내고 있었고, 옳고 그름의 당위성을 선명하게 이야기 하는 곳에 폭력적인 모습이 겹쳐보였다. 모두가 힘의 논리속에 아우성치고 있었다. 이번 심방은 이러한 이야기들에 앞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우리가 우리의 힘을 빼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를 내려놓고 다른이에게 귀 귀울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하는 것,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우리의 어우러진 삶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너와 내가 살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삶속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갈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살아져간다는 것이었다. 심방 속 어른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가장 현장적인 것이 가장 진보적인 것이었다.
녹지 않은 눈이 아직 위세를 떨치고 있고, 찬바람이 제 힘 자랑을 멈추지 않은 한겨울 아침 우리의 심방은 시작되었다. 세상의 어려움과 아픔에 함께하겠다고,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배워보겠다고 가소로운 청년 10명 남짓이 모여 여행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이 후 4일 여간 비정규직 농성현장, 인권강연, 민중교회, 마을 공동체 만들기 현장, 푸드뱅크, 노숙자 사역, 이주민 센터, 그리고 협동조합 등을 방문하였다. 때로는 뜨거운 토론이 있었고 때로는 따뜻한 나눔이 있었다. 식탁은 언제나 풍성하였고, 우리는 가는 곳 마다 열렬한 환대와 사랑, 나눔을 대접받고 돌아왔다. 우리는 언제나 귀한 손님이었다.

다시 되돌아 보니 그랬다. 모든 곳의 모든 분의 얼굴에 기쁨과 열정이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모순들에 직면에서 문제를 최일선에서 풀어가는 사람들 치곤 너무 맑았다. 지칠법도 한데 때때로 회의주의의 그림자가 치고 올라올 법도 한데 그것을 가볍게 뛰어오르고 있었다. 흡사 무림의 고수들 같았다. 그들의 기쁨과 환희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살아가는 법을 회복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스스로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웃과 마을공동체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동료와 이방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사회와 세계와의 관계를 회복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있었다. 나누고 베풀고 사랑하며, 삶을 삶이 되지 못하게 하는 문제들 앞에서 삶을 회복하기로 작정하고 살아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