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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산선

[경남일보] "호주선교사 보고서에 담긴 1900년대 경남" (23.4.27.)

Date
2023-05-0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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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교사 눈으로 본 1900년대 지역민의 삶
백정 동석 예배 사건 등 형평 운동 불씨도 담겨
휴 커를, 넬리 스콜스, 케서린 레잉 보고서·편지 번역책 나와



형평운동 100주년을 맞아 진주에서 형평주간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당시 백정 차별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인 ‘동석 예배 거부 사건’ 등 1900년대 초 지역민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이 발간됐다.

진주교회는 이달 초 ‘호주 선교사:휴 커를, 넬리 스콜스, 캐서린 레잉’을 발간했다. 진주교회 설립 초기 진주에서 의료·교육 행보를 펼쳤던 3명의 호주 선교사가 본국에 보낸 활동 보고서와 편지들을 양명득 선교사가 편집·번역한 책으로, ‘진주지방 의료 교육 순회전도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었다.

책 속 호주 선교사 3인방은 한 세기 전 진주에 선교부를 개설해 활동한 선교사들이다.


병원에 업혀오는 환자. 사진=호주 선교사 앨범

시약소에 가마타고 온 환자. 사진=‘더 크로니클’, 1914
휴 커를은 의사로 진주 첫 서양식 병원인 배돈병원을 설립·건축해 운영했다. 서양식 의술을 도입해 지역에서 환자를 치료했고, 한국인 간호사를 배양해 근대 의학에 이바지했다.

 


선교사 넬리 스콜스와 여학교 교사·학생. 사진=‘더 크로니클’ 1916
넬리 스콜스는 학교 교사로, 여학교를 운영하며 한국의 근대식 교육에 공헌했다. 특히 당시 여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가정과 사회에서 당당히 살 수 있도록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도왔다.

 


선교사 캐서린 레잉과 한국어 교사. 사진=‘더 크로니클’ 1917
 

캐서린 레잉은 당시 진주 지방 순회 전도 업무를 맡았던 평신도 선교사다. 진주에서 남해까지 거친 길을 오가며 여성 공부반을 개최했던 평신도 선교사였다.

 

책에는 이들이 선교 활동을 하며 마주했던 당시 한국의 모습이 물씬 담겨 있다.

형평운동을 논할 때면 빠지지 않는 백정 동석 예배 거부 사건과 이를 극복하고 다시 함께 예배에 나선 이야기도 등장한다.

“지난번 우리 교회를 떠난 교인들은 우리 교회의 한 부자의 집에서 모이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에 많은 교인이 지금은 그 백정들을 그렇게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백정들도 좋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신들로 인해 교회에 분란이 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 교인들이 모두 받아들일 때까지 몇 개월간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더 크로니클 1909년 9월 1일)

“교인들이 백정을 무시했던 죄를 자복했다. 모두 함께 모여 평화롭고 감사함으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했다.”(더 크로니클 1909년 12월 1일)

당시 지역의 풍물과 조선인의 삶 등도 엿볼 수 있어 향토학적으로도 흥미롭다.

“한국인은 흰옷에 긴 검은 모자를 쓰는데 위엄있게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 모자와 부츠를 신기도 한다. 여성들도 자유롭게 거리를 다니고, 티 하나 없는 흰옷을 입은 여성이 있는가 하면, 깊은 얼굴 주름에 더러운 옷을 걸친 가난한 여성도 있다.”(더 크로니클 1914년 2월 2일)

“이곳의 일본인들은 추수하기도 전에 논에 있는 곡식을 다 구매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곡식을 해외로 반출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높은 가격을 주고 곡식을 사고 있으며, 그것마저도 부자가 독점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남겨지는 것은 없다.… 최근 수 명의 남성이 산에서 나는 풀, 소나무 가지, 진달래 묘목 등을 지고 6~9마일(9.7~14.5㎞)을 걸어 팔려고 왔다. 그들은 6센을 받기 원했다. 평균 한 사람의 식사비다.”(더 크로니클 1911년 6월 1일)

교회 측은 호주 선교사들의 신앙·희생을 기리기 위해 이번 책을 출간하고 보급에 나섰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