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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산선

[뉴스앤조이] "비정규직 노동, 소외의 한복판에서 경험한 것들"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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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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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산업선교회가 주최한 기독 청년 노동 훈련 수료 감사 예비 및 보고 대회가 5월 1일 열렸다. 가운데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청년 3명(왼쪽부터 이창기 청년, 류제민 청년, 김주현 청년)이 지난 12월부터 2월까지 노동 훈련에 참여했다. 사진 제공 영등포산업선교회

1. 들어가며

소외.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에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가시화한 개념이다. 책과 글자를 통해 접한 소외는 다소 추상적이었다. 노동자가 겪는 이질적인 괴리감 같은 것이리라 상상해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노동자로 지내며 몸소 겪은 소외는 머릿속에 그려 본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생생하고 강렬했다. 그것는 존재를 지우고 생명을 부품과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강력한 '흑마법'이었다. 그 속에서 주체성과 생명력을 잃어버린 존재는 탈출구만을 바라보게 된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소외가 개인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2. 기억은 손에 있다 : 한우 공장 단기 아르바이트



"그렇게 썰면 안 돼. 손에 힘을 빼고 칼날로 썰어야지."




생산팀 직원들은 칼질이 서툰 아르바이트생들을 나무라기에 바빴다. 공장 동료들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일을 시작한 나는 고기 손질에 필요한 어떠한 사전 정보도 얻지 못한 채 도마로 밀려오는 고깃덩어리를 투박하게 썰었다. 직원들은 내 뒤를 지나가다가 고기와 씨름하는 나를 보고는 뒤늦게 잔소리와 함께 손질법을 알려 줬다. 그렇게 채끝 등심, 꽃등심, 살치 등심, 참갈비, 본갈비 등 각종 부위 손질법을 꾸역꾸역 알게 됐다.

집 근처에 위치한 한우 공장은 설 명절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30여 명의 단기 아르바이트생을 뽑고 한 달간 도마 앞에 세운 채 하루 종일 질긴 고기를 썰게 했다. 아르바이트생 대부분 20대 초반 대학생이었으며, 소수의 30대 남성과 중년 여성도 있었다. 이주민 여성 노동자도 한 명 있었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으며, 점심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전에 10분, 오후에 2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한우 공장. ㄷ 자 형태로 세 개의 공장식 컨테이너가 자리 잡고 있다. 문이 닫힌 좌측 컨테이너는 고기 보관용 냉장창고와 행정팀 사무실로 사용하며, 문이 열린 우측 컨테이너는 고기 보관 및 택배 포장 공간으로 사용한다. 사진 제공 이창기

온종일 낮은 도마 앞에서 허리를 살짝 숙인 채 밀려오는 고기를 썰어 내느라 발바닥, 손가락 관절, 허리에 통증이 밀려왔다. 몸은 고통스러웠고 반복되는 동작 때문에 시간은 더디 흘렀다. 도마 위로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고기 때문에 칼날은 무뎌질 대로 무뎌져서 생산 속도는 점점 더 느려졌다. 신체적 고통과 지루함 속에 갇힌 나를 위로해줬던 것은 직원들 몰래 한쪽 귀에 꽂아 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강의였다.



"기억이 어디 있죠? 주로 머리나 가슴에 있다고들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손과 발에도 있지 않나요? 요리하는 어머니들을 떠올려 보세요. 레시피를 따로 적어 놓지 않잖아요."




남산강학원에서 동양 고전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고전 평론가 고미숙 선생의 인문학 강의를 듣던 중 기억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기억은 정신과 관련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감각기관에도 기억이 있다는 고 선생의 말씀은 한 알의 씨앗이 되어 내 마음 밭에 심겼다. 그 말씀이 내 육신에서 살아 숨 쉬는 체험을 한 것은 한우 공장에서의 근무 일수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저녁이었다. 퇴근 후 집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된장찌개를 끓여 먹기 위해 대파를 써는데, 내 의식과는 상관없이 손이 알아서 힘을 빼고 부드럽게 대파를 썰고 있었다. 칼을 잡으면 자동 반사적으로 힘을 빼는 내 손을 보면서 '그만큼 일이 손에 익었구나' 하는 뿌듯함과 '내가 공장의 부품이 됐구나' 하는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무리 손에 힘을 빼고 고기를 손질한다 해도 하루 종일 손에서 칼을 놓지 않으면 손에 상당한 무리가 간다. 칼날을 고정하기 위해 칼등에 얹었던 오른손 검지는 왼손 검지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부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른손 약지가 마치 녹슨 로봇의 팔처럼 부드럽게 접었다 펴지질 않았다. 뻣뻣한 약지는 노동의 고됨과 노동자들의 고통을 상기시켰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손가락의 뻣뻣함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하면서 한우 공장에서 근무하며 느꼈던 고통도 함께 무뎌졌다.



생산실 컨테이너 외관. 1층에서는 고기 손질 및 포장 작업이 이뤄지고, 2층은 생산팀 직원 휴게실과 택배 물품 보관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창기

공장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삶의 주체성을 빼앗긴 듯한 기분이었다. 공장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주경야독'이 목표였으나, 그것은 내가 공장 노동자의 삶에 대해 얼마나 관조했는지를 보여 주는 지표가 됐다. 퇴근 후 체력이 소진 몸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며 스스로를 침대에 묶어 놨다. 미래를 위해 공부하거나 시간을 할애할 여력이 없었다. '몸'과 '머리'를 쓰는 일을 이분화해 '몸 쓰는 일'에 대한 경멸이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왜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없는지 온몸으로 느꼈다.

내 시간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장에서는 직원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만 했다. 그들이 일하라는 곳에서 휴식 시간 전까지 일해야 했다. 설 명절이 시작되는 주간에는 주문이 폭주해서 야근이 반복됐다. 계약서에는 분명 오후 6시 퇴근이라고 명시돼 있었고 그 이후 잔업과 야근은 선택 사항이었으나, 이 주간에 직원들은 오후 6시가 되도 작업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동료 아르바이트생의 눈치를 보다가 직접 직원에게 퇴근해야 한다고 말을 해야 겨우 집에 보내 줬다.

3. 자기 시멘트를 지고 나를 따르라 : 일용직 건설 현장 잡부

한우 공장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마친 뒤, 건설 현장 일용직 잡부로 일하기로 결정했다. 인력소 직원에게 내일 일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기 전에는 늘 두려움을 이겨 내야 했다. 사실 작년 여름에도 같은 인력소를 통해 각종 건설 현장과 소형 물류 창고에서 일을 했지만, 어떤 현장에 배치되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왜 그리도 익숙해지지 않는지. 그 불안과 공포를 이겨 내는 것은 매번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인력소는 주로 집 근처에 위치한 주상복합건물 건설 현장에 나를 배치시켰다. 대부분의 건설 현장들은 주로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한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옷을 입었다. 추위를 이겨 낼 수 있으면서도 몸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편한 복장이어야 했다. 건설 현장 잡부로 일할 때 필요한 각종 준비물을 챙기고 6시 10분까지 현장 인근에 위치한 한식 뷔페로 향했다. '함바'라고도 불리는 한식 뷔페에서의 아침 식사는 고된 노동을 감당할 현장 인부들에게 필수 요소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현장으로 갔다. 두려움을 뚫고 도착한 현장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웠다. 잘 알려진 대형 건설사인 T사에서 짓는 건물이었다. 그 바로 옆에는 다른 유명 건설사 H사에서 짓는 주상복합건물이 있었다.



T사 주상복합건물 건설 현장 외관. 사진 제공 이창기


인부들은 주로 50~60대 남성들이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모였다. 대형 쇼핑몰 청소 노동자, 설비공, 조폭 출신 인부, 부도난 사업가, 은퇴 후 할 일이 없어서 일하러 나온 노인, 여행 가기 위해 돈 모으러 온 청년도 있었다. 내가 주로 일했던 T사 현장은 완공 단계에 들어섰다. T사 직원인 작업반장은 인부들에게 청소 업무를 배정했다. 2~3인이 한 조로 편성된 각 조는 층별로 흩어져서 바닥에 흩뿌린 시멘트 가루를 쓸어서 포대에 담고, 건설자재를 정리하고 옮겼다. 시멘트 가루와 각종 먼지가 휘날려서 퇴근할 때가 되면 항상 마스크가 검게 변해 있었다. 한우 공장보다 노동강도도 강했고, 시멘트 먼지를 들이켜서 그런지 건설 현장에서 첫 근무를 마친 뒤 며칠을 앓아누웠다.

건설 현장에서 근무한 기간 중 가장 힘든 일을 손꼽으라 하면, 시멘트 옮기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요즘에는 주로 지게차를 이용하거나 레미콘에 대형 튜브를 연결하지만, 가끔 인부들에게 시멘트를 옮기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한다. 하루는 T사가 아닌 바로 옆 H사 건설 현장에 배치된 적이 있다. 건물 외관을 올리기 위해 시멘트 작업이 한창이던 H사 주상복합건물은 인부들에게 시멘트를 직접 옮기도록 했다. 인부들은 40kg 정도 되는 시멘트를 등에 지고 1층에서 출발해 3~6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시멘트 옮기기는 이번 겨울에 내가 했던 일들 중 노동강도가 가장 강한 일이었다. 일이 반복될수록 허리와 무릎에 통증이 부과됐다. 너무 고통스럽지만 1층에 쌓여 있는 시멘트가 없어지고 바닥이 보일 때까지 끝낼 수 없는 일이었다. T사에서 건물 청소를 하면서도 늘 허리를 살짝 숙인 채 빗자루질을 해서 허리 통증이 따라다녔는데, 시멘트를 옮긴 날에는 허리 통증이 배가됐다. 시멘트를 옮긴 다음 날 다시 앓아누웠다.

한우 공장을 다니는 동안 몇 년 만에 연락이 닿은 대학 친구가 있었다. 친구에게 요즘 공장에서 일한다고 하니 "노동의 숭고함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겠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노동의 숭고함.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된 육체노동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노동은, 숭고함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고난의 십자가와 같은 것일 수 있다. 노동은 노동이 아닌 '노역'이 된다. 시멘트를 지고 계단을 오를 때 문득 예수가 떠올랐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생각할 겨를이나 있었을까. 오죽하면 시몬이 그를 대신해 십자가를 졌을까. 시몬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4. 성찰: 내가 마주한 노동 현실

(1) 불안의 연속


두 달간 비정규직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번 돈은 300만 원이 채 되는 않는 액수였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지정한 정규직 노동자의 2023년 최저 월급1)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더 열심히 돈을 벌기에는 노동강도가 너무 강해서 장기간 매일 출근하기 어려웠고, 근무 현장도 위험했으며, 책임지는 본사도 없었다. 몸이 아파서 누워 있으면 건강 상태보다는 병원비와 생활비에 대한 걱정이 앞섰고, 일터에서는 이렇게 일해서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해외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여가 더 높게 책정된다는데, 왜 한국 사회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더 낮게 책정하는지, 우리 사회도 저 멀리 유럽 국가에서 시행하는 것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전과 임금이 적절히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비정규직 노동으로도 충분히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볼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할 수 있을지, 교회는 노동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 어떤 일에 힘써야 할지, 여러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2) 관계의 단절

동료들과의 관계 단절은 특히 건설 현장에서 많이 느꼈다. 인력소와 매일 새로운 계약을 맺어야 하는 일용직 근무의 특성상,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들은 자주 바뀌었다. 또한 건설사 직원들은 인부들끼리 모여서 얘기하고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조원들과 함께 각자 청소할 구역을 정하면, 말없이 청소만 해야 했다. 행여나 인부들이 같이 붙어서 일하는 것을 보면 건설사 직원들이 나무라기도 했다. 쉬는 시간에 잠깐 서로의 인적 사항과 배경을 나누는 것 외에는 더 깊은 이야기을 나눌 수 없는, 느슨한 연대조차 이뤄지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3)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혐오

성별에 따른 분업화는 공장을 다니는 내내 눈에 띄었다. 고기 써는 일과 택배 포장은 '힘센' 남성들의 몫, 고기 포장은 '섬세한' 여성들의 몫이었다. 공장 내부 청소를 할 때도 대걸레로 바닥을 쓸고 닦는 것은 남성들이, 칼과 고기 손질에 필요한 각종 도구를 설거지하는 것은 여성들이 맡았다. 손이 빈 여성 노동자가 남성 노동자와 함께 짐을 옮길 경우, 직원들은 남성들이 하면 된다고 만류하기도 했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성별 분업은 명확했다. 의사 결정을 하고 공장 직원들을 지휘·통솔하는 책임 있는 직책에는 남성들이 있었으며, 여성 직원들은 책임자들의 지시에 따라 아르바이트생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건설 현장에서는 여성 혐오와 이주민 노동자를 향한 적대감이 동시에 드러났다. 쉬는 시간에 인부들끼리 주고받는 음담패설과 온라인 포르노는 나로 하여금 동료들과 거리를 두게 했다. 한 20대 동료는 주상복합건물 주차장에 만들어진 여성 전용 주차칸을 보며 "왜 저런 것들을 만드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어느 날은 한 사설 업체에서 주상복합건물 계단 물청소를 하러 왔다. 알고 보니 물청소 노동자들은 중국에서 온 이주민 여성들이었다. 나와 같이 빗자루질을 하던 동료들은 "저 사람들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라며, "중국인들한테 일 배우기 싫으면 지금부터라도 빨리 기술 배우고 실력을 쌓으라"는 혐오 발언을 조언인 양 늘어놓았다.

(4) 위생

한우 공장도, 건설 현장도 위생은 엉망이었다. 힘들게 썰어서 상품화한 한우를 봐도, 뿌듯한 마음이 들거나 사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생산과정이 얼마나 비위생적인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고기를 썰고 있는데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생산실에 들어와 칼날을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다. 생산팀 작업복과는 어울리지 않게 관료처럼 멀끔한 차림을 한 그는, 처음 보는 휴대용 전자 기기를 칼날에 대 보기도 하면서 무언가를 조사하는 것 같았다.

조금 있다가 그는 생산팀 직원을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목소리가 컸던 그 생산팀 직원은 이번에 새로 구매한 칼인데 이상하다며 그럴리 없다고 했다. 그 직원의 말을 들으며 칼을 살피던 사람은 '위생사'였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생산실 직원의 항변은 '칼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다'는 위생사의 지적을 부정한 것이었겠다고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도마의 위생 상태도 그리 깔끔하지 않았다. 평소 도마는 스크래퍼(헤라)를 이용해 고기 찌꺼기를 긁어내는 방식으로 관리한다. 그러나 그걸로는 도마에 난 흠집에 낀 찌꺼기까지 긁어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고기 찌꺼기는 분홍색을 띠지만, 흠집 사이에 묻어 있는 찌꺼기는 회색빛을 띤다. 한 달간 한우 공장 근무를 하며 도마를 제대로 청소했던 것은 딱 한 번이다. 따뜻한 물에 청소용 세제를 풀어서 도마 위에 뿌리고, 스크래퍼로 평소보다 열심히 묵은 때들을 벗겨 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고기 손질이 마무리될 즈음에 시행했기 때문에 이미 많은 고기가 비위생적인 도마 위에서 손질되고 포장됐다.

건설 현장은 어떨까. 얼마 전 건설 현장에 화장실이 없어 인부들이 건물 내부에 일명 '똥방'을 정해 놓고 무분별하게 배변을 한 뒤, 그 위에 시멘트를 덮어서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만든다는 소식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줬다. 하지만 나는 그 소식이 그리 충격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일했던 건설 현장도 크게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지하 주차장을 청소하던 중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우리 조원들에게 화장실 위치를 물었는데, 그들은 "그냥 아무 데나 구석에 가서 해결하라"고 말했다. 우리가 청소하던 지하 주차장은 이미 페인트칠까지 마쳐서 방문객들의 차가 주차돼 있었지만, 동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되지 않아 조원들은 차가 생각보다 많다며, "이제는 아무 데나 싸면 안 되겠다"고 입을 모았다.

(5) 기후 정의: 산업폐기물과 동물권

많은 이가 지구별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생명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의 주범으로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을 지목한다. 그러나 어디 화석연료만의 문제일까. 각 산업 현장에서 폐기되는 막대한 양의 쓰레기는 우리네 땅을 황폐화시키며 수질을 오염시킨다. 한우 공장은 폐기물을 쏟아 낼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손질된 고기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채 비닐 포장지에 압축·밀봉된다.

택배 발송 시에는 고기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스 팩과 스티로폼 박스가 사용된다. 이런 방식으로 처리한 주문 건수가 눈으로만 몇 백 건은 돼 보였다. 플라스틱·비닐·스티로폼을 사용하는 업체가 어디 이곳뿐이랴. 공장에서 버려지는 산업페기물의 발생량이 상당하다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

건설 현장 역시 심각하다. 건설 현장에서는 건설자재가 담긴 종이 박스 말고는 분리수거 자체를 하지 않는다. 한 포대 자루에 시멘트 가루, 담배꽁초, 비닐 포장지, 건설용 스티로폼 부스러기, 휘어지고 녹슨 철근 등 온갖 폐기물이 뒤섞여 들어간다. 그 포대 자루는 건설사 현장 사무실이 있는 컨테이너 박스 옆 공터에 무분별하게 방치됐다가, 트럭이 한꺼번에 싣고 어디론가 떠난다. 과연 그 폐기물들은 어디로 갈까.



T사 현장 사무실 옆 공터. 자재와 쓰레기가 쌓여 있다. 사진 제공 이창기


인간의 먹거리가 동물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의식은 중학교 때 만난 한 선생님께서 동물권 관련 다큐멘터리2)를 소개해 주신 이후부터 시작됐다. 그저 내 입에 넣는 맛있는 고기로만 생각했던 존재들이, 한때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이었고, 인간의 탐욕을 위해 태어나 폭력과 억압 속에서 지내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해 준 작품. 성인이 된 이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양한 일자리를 경험했지만, 식품 산업 분야는 이번 노동 훈련을 통해 처음 경험해 봤다.

소 한 마리를 잡아도 조금밖에 나오지 않아서 귀하다는 안심이 도마 위에 쌓이고 쌓여서 더 이상 놓을 자리가 없게 되는 광경을 보며,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거대한 냉장창고에 쌓인 고깃덩어리들이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 처분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태어나고 희생되는 동물들의 비참한 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고기를 손질하며 도마 위에 번지고 하얀 면장갑으로 스며드는 피는 역한 냄새를 풍긴다. 어느 날 한우 공장에서 고기를 썰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만약 내가 지금 썰고 있는 고기가 소가 아닌 사람이었다면, 만약 인류보다 더 강력한 종이 나타나서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우리에 가두고 대량으로 도축한다면 인류의 삶은 어땠을까. 왜 인류는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일까.

5. 나가며
노동 현장에서 발견한 소외는 결코 노동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 기후 위기, 가부장제, 인종주의, 육체노동에 대한 경멸 등 다양한 요인이 얽히고설켜 발생하는 복합적인 문제라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여성·생태·정치 문제를 연구한 신학자 도로테 죌레(Dorothee Sölle)는 소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기소외는 인간의 본질적 특징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이다. (중략) 그것은 '역사적 과업'의 무대 위에 등장한 것이며, 그 무대에서만 지속되거나 극복될 것이다."3)




이어서 죌레는 좋은 노동은 개인·공동체·자연을 고려하는 것이라며, 모든 생명이 소외로부터 극복되는 차원으로서의 노동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교회는 노동자들과 뭇 생명들과 어떻게 연대하고 행동할 것인가.

그러나 거시적 차원의 노력과 더불어, 노동자들 간 관계 형성과 소속감 형성이 가능한 환경도 중요할 것 같다. 건설 현장에서 일할 때, 한우 공장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소외감을 느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저렴한 값에 이용되는 부품이라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겠지만,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는 현장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건설 현장은 한우 공장과 달리 매일 인력소와 새로 계약해야 일할 수 있었고, 그날 내가 어느 현장으로 파견될지 알 수 없었다. 즉, 노동자들끼리 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웠다. 그 때문에 내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현장에서 나는 어떤 존재며, 왜 여기 있는 것인지 회의감 느꼈던 것 같다.



또한 건설 현장에서는 내 존재를 인정해 주는 이름 '이창기'보다는 그때그때 부리기 편한 '야' 또는 '반장님'으로 불렸다. 한우 공장에서 일할 때 하루는 직원 이모님이 "창기 씨, 여기 와서 이것 좀 해 주세요"라고 부탁하며 내 이름을 불렀는데, "친구야"로 불렸던 그전보다 내가 이 공장의 일원이 됐다는 소속감을 느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우 공장에서는 건설 현장과는 달리 아르바이트생 간 대화와 관계 형성이 가능했다. 항상 붙어서 일했고,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었으며, 매일매일 만나며 서로 얼굴을 익혀 갈 수 있었다.

한국교회 구성원이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소외가 일어나는 노동현장에서 어떤 구체적인 실천을 도모해 볼 수 있을까. 노동자 개인이 고립되지 않도록 공장이나 건설 현장 같은 노동현장에 고정된 소그룹을 만드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하도록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노동자들 간 관계 형성을 위해 '대화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외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머리만이 아닌 노동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직면한 소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강력하게 생명을 감퇴시키는 힘 그 자체였다. 더 나아가 그 힘은 분명 성경 말씀에 위배되는 질서였다.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소수자가 겪는 어려움을 대하는 데 퇴행하는 모습을 보여 온 한국교회. 예배당에서만 선포되는 하나님의 정의와 이웃 사랑은 그저 노동자들의 고통을 방관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글과 머리로만 이해하는 세상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교회가 관조하거나 방관하는 죄를 회개하고 참여하기를 바란다.

뭇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변혁적인 노력을 통해 노동자 자신과 이웃 노동자들의 생명이 존중받을 때, 자본을 중심으로 구성된 소외된 형태의 노동은 이 세상을 더 충만하게 가꾸어 가는 생명력 있는 것으로 변화할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창조하신 생명과 함께 호흡하고 발맞추려는 참여와 변혁이 우리를 소외로부터 구원할 것이다.


이창기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재학생.



1) 최저임금위원회가 지정한 2023년 최저임금은 시급 9620원, 일급 7만 6960원, 월급 201만 580원(주 40시간, 유급 주휴 8시간 포함)이다. 출처: https://www.minimumwage.go.kr/main.do
2) 숀 몬슨, '지구 생명체', 2005, 90분, 다큐멘터리.
3) 도로테 죌레, <사랑과 노동>, 분도출판사, 서울, 2018, 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