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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산선

[에큐메니안] "길을 찾아서"(23.6.9.)

Date
2023-06-1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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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으로 노동조합과 활동을 항변했던 고 양회동 열사 ⓒNCCK인권센터
 
이 칼럼은 NCCK인권센터(소장 황인근 목사)가 매달 발행하는 [뉴스레터-인권이슈]에 게재된 글입니다. 에큐메니안에 다시 게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NCCK인권센터와 이 칼럼의 저자이신 송기훈 목사님께(영등포산업선교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머리가 깨졌다

위태로운 망루에 홀로 오른 노동자를 끌어내리기 위해 경찰은 방패와 곤봉으로 중무장한 채 크레인 두 대에 나눠타고 양쪽에서 노동자를 조이기 시작했다. 앉아있던 의자를 집어 던지고 길다란 작대기를 애써 휘둘러봤자 소용이 없었다. 망루에 진입한 경찰은 곤봉을 휘두르며 노동자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경찰의 벽에 막힌 채 비극적으로 외쳐야만 했던 동료 노동자들의 “그만해”라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곤봉에 맞아 아파 주저앉은 노동자를 향해 경찰의 곤봉세례가 퍼부어졌다. 굳이 더 때릴 이유가 없었다.

사람이 죽었다

노동운동에 잔뼈가 굵은 사람도 아니었다. 건설노조에 가입한지 5년도 안되는 사람이었다. 임금을 더 이상 좀 떼먹히지 않기 위해, 너무 비참하게 일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건설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떨어졌고, 공포에 질린 한 사람은 그 공포심을 이기기 위해 몸에 불을 붙여야만 했다. 비극의 잿더미 위에 남겨진 15살 상주는 장례식장에서 “우리 아빠가 진짜 범죄자였냐?”고 물어야 했다.

인권이 손상됐다

인권 앞에는 보통 ‘천부’라는 단어를 붙여 인권은 하늘이 사람에게 내린, 태어나면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임을 설명하곤 한다. 어떤 법 보다 앞서는 권리이며 훼손될 수 없는 가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인간이 노동자가 되는 순간 인권은 사라진다. 노동자는 죄인이 된다. 권리를 되찾으려 하는 순간 폭력배가 된다. 노동자는 눈과 호흡기에 심각한 손상을 주는 최루액을 맞아도 되고 곤봉으로 머리를 내리쳐도 괜찮은 존재가 된다.

하늘이 내렸다

하늘이 내린 사람 예수를 생각해본다. 인권도 법도 없던 시절, 사람위에 사람이 없음을 외쳤던 한 사람이었다. 종교와 법의 심판을 받아 공개처형을 당해야만 하는 결과를 알고도 그는 그 길을 걸어갔다. 인간을 그토록 사랑했기 때문에 그는 밤하늘 위에 떠올라 사람들의 갈 길을 알려주던 북극성처럼 그는 죽음과도 같은 어두운 현실을 비추는 천부인권의 상징이 되었다.

길을 찾아서

오늘도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정표도 없고 나침반도 없지만 제 갈길을 정확히 아는 철새처럼 그렇게 몸이 시키는 대로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기러기가 대형을 갖춰 먼 거리를 날아가듯 그렇게 서로 힘을 보태며 하늘에 한 줄 길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 흔적도 없지만 분명히 알고 있고, 그 길의 끝에는 나와 동료들이 안전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믿는다.

하늘이 내려준 사람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켜 교회라 부르고, 그들을 기독교인이라 말한다. 그 길을 가던 한 선지자는 불타는 마차에 이끌려 하늘로 올라갔고, 그 길을 걷던 사람에게 부활한 그리스도가 나타났다. 성령강림절, 길을 잃고 헤매던 이들이 길을 찾게 된 순간을 뜨겁게 기념하여 새겨진 이 시기, 먼저 간 이들의 다정한 초대에 응답해 보는 것은 어떨까?

 

송기훈 목사(영등포산업선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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