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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 지금의 '영등포'는 이주·장애·비정규·플랫폼 노동자…은폐된 존재 드러내고 연결할 것(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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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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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 노동 선교, 민주화 운동의 요람'은 영등포산업선교회(산업선교회·손은정 총무)의 오랜 역사를 설명하는 수식어다. 경공업 산업 단지가 모여 있던 영등포에서 시작해 산업 선교의 기치를 올리며 독재 정권과 싸워 온 산업선교회는 올해로 설립 63주년을 맞았다.

 

뒤로멈춤앞으로
산업선교회가 처음 시작했을 때 '영등포'는 지역 공단 노동자들을 상징했다. 하지만 지금 영등포 일대의 모습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산업 단지는 이미 수도권 외곽으로 전부 빠져나갔고 그 자리를 아파트, 대형 상업 시설 등이 메꿨다. 영등포 문래동 일대는 이제 느낌 있는 '맛집' 밀집 구역으로 젊은이들에게 더 유명하다. '산업 선교'의 대상이었던 공단 노동자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산업선교회는 그 자리에서 사역을 이어 왔다. 1970~1980년대 활동의 정점을 찍은 후, IMF 사태 때는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손을 잡았고 이후로도 협동조합 조직, 노동자 심리 상담, 투쟁 현장 탐방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명맥을 유지했다.

해마다 '노동 주일' 예배를 주관하는 것도 산업선교회 역할이었다. 산업선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신정호 총회장)은 4월 넷째 주일을 노동 주일로 지킨다. 주제에 맞게 총회장 목회 서신을 발표하고, 예배 모범 서식도 배포하지만 이를 지키는 교회는 사실 많지 않다. 노동 주일 예배는 산업선교회와 총회 관계자들만 참석하는 연례 '행사'가 됐다.

올해는 조금 달랐다. 산업선교회는 올해 노동 주일을 앞두고 '노동 주일 설교문'과 '노동 주일 성도의 약속 10가지'를 공모했다. 일반 목회자와 교인이 지금 이 시대 노동의 의미를 고민해 보면 좋겠다는 의도로 시작한 일이다. 짧은 준비·홍보 기간에 비해 꽤 많은 이가 지원했다. 당선자들은 자신이 작성한 설교문을 교회 공동체와 함께 나누며 노동 주일의 의미를 되새겼다.

산업선교회는 이번 공모전 기획과 같이 사역 방향의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일단 40년 넘은 건물의 리모델링 사업이 진행 중이다. 리모델링이 완료되면 건물 3~4층에는 영등포구가 운영하는 노동자 종합 지원 센터가 들어오고, 산업선교회 역사 전시관도 들어선다. 과거 산업 선교 활동을 돌아보며 지금 이 시대의 '영등포'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드러내는 작업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산업선교회를 이끄는 총무 손은정 목사는 1999년 신대원을 졸업하고 바로 기독교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공장에서 노동 훈련을 하고, 산업선교회 인턴으로 시작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산업선교회 총무로 활동했다. 손 목사는 "내가 처음 왔을 때도 산업선교회가 선교 방향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선배들이 고민하고 재검토하던 때였다"고 말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손은정 목사는 2009년에 이어 지난해 다시 총무를 맡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번아웃'이 되어 떠난 손은정 목사는 2020년 3월, 총무로 돌아왔다. 그는 "한 발 떨어져 있는 동안 오히려 더 신앙심이 생긴 것 같다"며 웃으며 말했다. 손 목사는 "선배들이 말하던 '하나님의 선교'가 무엇인지,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이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는 시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마음으로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리모델링 공사 주관하랴, 전시관 내에 들어갈 과거 자료 정리하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손은정 목사를 4월 27일 예장통합 영등포노회회관에서 만났다. 산업선교회가 속해 있는 영등포노회는 건물 한 층을 산업선교회에 임시 사무실로 내줬다. 교회가 어떻게 노동 이슈에 관심을 보일 수 있을지, 앞으로 산업선교회는 어떤 역할을 하려고 하는지 손 목사와 이야기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해 3월부터 총무를 다시 맡았다. 과거 총무를 맡았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처음 총무에 취임했을 때는 이미 사회적으로 노동운동과 관련해 전문 영역이 구축된 후였다. 각 업장에 노동조합 지부가 들어서고 법과 제도 정비도 한창이었다. 당시 산업선교회는 비정규직, 영세 사업장 미조직 노동자와 연대하겠다고 했으나 이것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고 힘들었다.

2014년을 끝으로 총무를 사임하고 쉬면서 어머니 간병을 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불안정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를 많이 만났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일하는 이들과 계속 마주치면서 그들의 처지, 구조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비정규직·이주·장애 노동자 등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있는 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내 상처 또한 회복하는 길이자 하나님도 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해 다시 돌아오게 됐다.

과거에는 산업선교회를 거룩한 곳으로만 생각한 게 사실이다.(웃음) 1999년 신대원을 졸업하고 바로 봉제 공장에서 6개월간 훈련을 받았다. 민중 교회 목회자가 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꿈을 갖고 왔는데, 그때는 피상적으로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조금 다르다. 모든 사역은 하나님이 주관해서 하시는 것이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임하고 있다.

- 과거와 달리 최근 산업선교회가 하는 일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

산업선교회는 지난 10년간 노동자 심리 상담을 중점적으로 했다. 감정 노동을 강요받는 노동자들이 심리 상담을 받고 싶어도 상담료가 너무 비싸서 갈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노동자의 언어와 문화를 알고 있으니까 노동자의 정신과 영적인 부분, 마음 건강을 챙기는 방향으로 사역을 집중했다.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신학생, 기독 청년이 노동문제를 현장에서 직접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기독교 노동운동을 함께 고민할 일꾼을 양성하고, 연대가 필요한 투쟁 현장에 가서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등의 활동을 주로 해 왔다.

사실 독재·군사정권 시절에는 싸워야 할 대상이 명확했다. 게다가 당시 산업선교회를 이끄는 이들은 노동 전문가 이상으로 노동문제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선교회니까 단순히 도와주고 기도해 주는 차원으로 접근한 게 아니라, 열악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깊은 의지가 작동했다. 실제적으로 노동조합을 꾸리고, 어떻게 법을 재정비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고 직접 활동에 나섰다. 그래서 산업선교회가 노동운동의 요람, 산파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노동환경이 너무 다변화했다. 일례로 배달·배송 노동이나 하청에 재하청이 이어지는 등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졌다. 저 수많은 배달 노동자가 법적으로는 노동자가 아니다. 개인 사업자다. 이런 현실에서 산업선교회는 노동권에서 밀려나 있는 사람을 위해 어떤 법이 필요한지, 누가 소외돼 있는 이 시대의 '영등포'인지를 다시 고민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영등포산업선교회를 빼고는 노동운동,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할 수 없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7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과거 총무로 일할 때와 지금 일하면서 접하는 노동문제가 다를 것도 같다. 산업선교회는 앞으로 어떤 일에 주목할 예정인가.

노동 현장이 굉장히 파편화된 게 사실이다. 청년층은 더한 것 같다. 지금 신학생 두 명이 과거 내가 하던 것처럼 공장 훈련을 받고 있다. 그동안 이런 훈련은 잠시 '멈춤' 상태였다. 과거 사료를 정리하던 중 1958년 산업선교회를 시작할 때부터 선배들을 탄광촌 등지로 보내 당시 노동자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다. 마침 이 운동에 관심있는 학생들과 연결이 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하겠다고 해 현재 훈련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선교·전도를 위해 현장에 뛰어들었다면 지금은 목적이 조금 다른 것 같다. 학생들이 직접 노동 현장에서 일하며 동료들과 얘기해 보니 정보 편차가 굉장히 심하다고 했다. 정부가 제공하는 청년 취업 혜택 등을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른다. 소셜미디어가 상당히 발달했고 청년은 이용에 능숙하기 때문에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자기 몫을 잘 챙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런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도 복음일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초연결 사회'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분절돼 있다. 노동조합이 없는 곳도 많고, 노조가 챙기지 못하는 노동자도 많다. 노동자가 한두 달 일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 보니 사용자 역시 계속 인력을 대체해 가며 사업을 이어 간다. 사람이 기계보다 못한 부품처럼 취급되는 일이 이미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책임을 떠넘기는 데 급급하다. 불안정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는 늘어 가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지금 우리의 큰 과제다. 산업선교회가 그 어떤 단위보다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요즘은 구성원들과 그 부분을 공부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산업재해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예장통합 인권평등위원회와 사회문제위원회가 지난 4월 20일 '노동과 인권'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님이 오셔서 "우리 아들 같은 허망한 죽음을 막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각자도생해서는 안 되고 이웃을 보살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 있다. 이 분은 기독교인도 아닌데 하시는 말씀이 정말 기독교적이었다.

김미숙 이사장님 말씀을 들으며 앞으로 산업선교회가 해야 할 일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회·기독교는 허망한 죽음을 막고, 버려지고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노동자들의 수고를 주목하고 기억해야 한다. 과거에는 지역적 '영등포'에만 주목하면 됐지만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 조지송 목사님이 "'영등포'를 벗어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지금의 '영등포'는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장애·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들이 아닐까 싶다.

- 솔직히 교회에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설 자리가 더 없어지는 것 같다.

기성 교회가 제도화하면서 사실상 영적 동력을 잃었다. 기성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같은 것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이럴 때일수록 역사 자료에 주목하면 좋겠다. '노동 주일'이 제정되던 1959년 총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가 '통합'과 '합동'으로 나뉘느냐 마느냐를 놓고 싸우던 때다. 그렇게 정치적으로 싸울 때도 교회는 사람들의 필요에 응해 '노동 주일'을 제정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이 제도화하면서 야성을 잃은 게 사실이지만, 다시 한번 '노동 주일'을 제대로 지켜 보자는 의미로 설교문 공모전을 하게 된 것이다.


영등포산업선교회는 건물 리모델링 관계로 현재 예장통합 영등포노회회관을 임시 사무실로 쓰고 있다. 활동가들이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노동 주일 설교문과 '성도의 약속 10가지'가 인상적이었다. 평소처럼 내부적으로만 소화하지 않고 대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계획한 이유가 있다면.

그동안 노동 주일은 산업선교회와 총회가 형식적으로 진행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노동자도 많고, 점점 노동문제는 복잡해져 가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안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할 시간이 얼마 없기는 했는데, 몇 명만이라도 노동 주일의 의미에 더 관심을 갖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공모전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이가 참여했고, 예상치 못한 결과물들이 나와 활동가들이 다 감동했다.

예를 들면 '성도의 약속 10가지' 순위에 못 들기는 했는데 "우리가 '소비자'의 자리에 앉았을 때에, 우리가 '노동자'였던 때를 기억하고 행동하겠다"는 글을 쓴 분이 있다. 이런 부분은 누구나 이해하기 쉬워서 더 와닿는 것 같다.

사실 교회에서 '노동'이라는 말은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용어 자체를 꺼리고 검열하기도 한다. 북한 '노동당'을 연상시켜서 그런 것 같다고 하는데, 그만큼 기성 교회가 많이 경직된 것 아닌가 싶다. '근로자'는 괜찮은데 '노동자'라는 말은 여전히 '좌파 빨갱이'를 연상시킨다며 거부하는 곳도 있지 않나. 교단 산하 모든 교회가 참여할 수는 없겠지만, 작은 공동체부터라도 노동 주일을 지키고 적극 참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교회가 노동자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려면 일차적으로 예배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좋다. 그러면서 조금씩 성도들의 인식이 변하고, 우리 신앙의 지평도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다 보면 아픔이 있는 곳에 직접 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리는 게 아니라, 직접 만나 그들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이야기를 들을 때 비로소 편견을 버릴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 산업선교회 활동 계획과 교회에 바라는 점을 간단하게 말해 준다면.

한국교회에서 산업선교회는 역시나 노동을 가장 전문으로 다뤄야 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을 드러내고 연결하는 일을 할 예정이다. 또 지금 하는 노동자 심리 상담을 더 전문적으로 하고 싶다. 교회에 빈 공간들이 많은데 그런 곳을 노동자 상담 공간으로 열어 줬으면 하면 바람도 있다. 콜센터 노동자 등 감정 노동을 해야만 하는 이들이 마음을 풀 곳이 없어 결국 자살을 택하곤 한다. 교회가 문을 열어 이들을 위한 공간을 내주면 좋겠다. 우려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선교의 그물을 내리는 마음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요즘 교회의 공공성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회적 관계망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논의하는데, 일단 공간을 열고 만남의 장을 자꾸 만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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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스앤조이] '지금의 '영등포'는 이주·장애·비정규·플랫폼 노동자…은폐된 존재 드러내고 연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