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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제정 노동주일 기념 제4회 공모전 설교문 부문 당선작] 김동희 "안식하라, 노동을 위하여."

Author
영등포산업선교회
Date
2024-04-03 16:35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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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출애굽기 20장 8-11절, 신명기 5장 12-15절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일하시느라 참으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일을 하면서, 내가 하는 이 노동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 생각하셨습니까? 아니면 견뎌내야 할 저주라 생각하셨습니까? 일이 참 고되고 힘들기에, 때로는 감정적인 수치와 모멸감을 견뎌야 했기에, 때로는 어렵고 위험한 순간들을 보내야 했기에, 우리는 때때로 이 노동이라는 것이 복이라 말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러한 생각에 더욱 기름을 붓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아담이 하나님께 받은 심판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후, 아담과 하와에게 반드시 지켜야할 규칙을 하나 주셨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꼬득임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와에겐 출산의 고통과 남편에게 의존하는 삶을 죄의 댓가로 치뤄야 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겐 수고하여 땅을 경작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될 것이라 선포하셨습니다. 땅을 곡식의 씨앗을 뿌려도 가시덤풀과 엉겅퀴가 더 빠르게 자라나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나타난 이 심판을 보면서, 우리가 하는 노동이 그저 죄의 댓가이며, 죽을때가지 생존을 위해 견뎌내야만 하는 저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오랜 시간 노동을 천대해오던 문화가 있어서, 더욱 노동하는 것을 스스로 멸시하게 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선 창세기 말씀을 유의해서 본다면, 노동을 하는 것, 그 자체는 결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노동을 하는데도, 그 노동에 합당한 댓가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 생명을 키우려 애쓰는데도, 생명이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파괴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심판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운명은 노동의 가치, 노동의 열매가 상실되는 일이었습니다. 말씀대로 밭에서 먹을 양식을 키우기 위해 애쓰는 데, 양식이 아닌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것은 이러한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왜곡하고 파괴하고 그 노동의 열매를 얻지 못하는 삶에서부터 돌이켜, 참된 노동의 결실을 맺는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역사는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제거하고, 풍성한 열매를 회복시키시는 역사 입니다. 놀랍게도 이후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이러한 일하심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일하셨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고된 이집트의 노예에서 탈출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세우시면서 그 백성이 지켜야할 열가지 계명을 선포하셨습니다.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열가지 계명의 네번째 계명으로, 하나님께서는 노동에 관한 계명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안식일에 관한 계명으로 생각하지만,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은 안식일에 관한 계명이면서 동시에 분명히 노동을 위한 계명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에 두구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십계명이 두번 나오는데요, 각각 출애굽기 20장 말씀과 신명이 5장 말씀입니다. 그 중 출애굽기 20장 8절, 9절 말씀과 신명기 5장 12, 13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출애굽기 20장]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신명기 5장]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말씀은 선포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또한 동시에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하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안식일을 제외한 날에 힘써 일하는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놀랍게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킬 때, 힘써 일하는 일, 곧 노동이 하나님 안에서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왜곡된 노동, 곧 열매를 얻지 못하는 노동, 생명이 자라지 못하는 노동에서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설명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 두가지 모두를 함께 살펴볼 때, 안식일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깊이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출애굽기 20장 11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라 명령하시면서 당신의 창조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온 세상을 6일동안 만드시고, 7일째 쉬셨다는 말씀을 하시며 내가 쉬었으니 너희도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전지전능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휴식이 필요한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몸소 우리에게 휴식을 본으로 보여주시며, 사람에게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휴식이 바탕이 될 때, 하나님께서 하셨던 일과 같이 창조적이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게 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날카로운 하나님의 비판이 담겨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지 얼마되지 않아 선포된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시키시면서 이집트에 열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재앙은 이집트 제국이 자신의 번영을 위해 섬겼던 신을 심판하는 재앙이었습니다. 그 모든 풍요로움을 지탱하던 나일강과 비옥한 토지, 뜨거운 태양과 힘센 가축들, 그리고 풍성한 자녀들까지, 이집트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리고 이 신들을 섬기기 위해, 더 정확히는 자신들의 풍요로움을 무한히 누리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피조물을 얻기 위하여, 나아가 피조물들을 섬기기 위하여 쉬지않고 무한히 일하는 상태, 모든 노동의 리듬을 피조물들의 생산에 맞추고, 모든 노동의 과정을 효율성에 맞춘 상태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쉴수가 없었습니다. 노동을 하다가 지쳐 쓰려져도, 심지어 목숨을 잃어도 그들은 멈출 수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생명을 키우려고 일을 하지만, 결국 생명을 잃게 되는 상태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이집트 체제를 심판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가르쳐 주시며, 너희의 노동이 피조물들에게 예속되지 않도록, 너희의 노동이 욕망과 탐욕에 예속지 않도록 매주 안식하며 그것을 되살펴라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노동의 리듬을 맞추는 것, 노동의 주도권을 찾아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원의 삶이라는 것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신명기 5장 15절 말씀에서는 이것을 더욱 분명하고 선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안식일의 의미는 다름 아닌 노예로부터의 해방의 의미입니다. 우상숭배와 죄악의 문화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저 풍요로움을 위해, 제국의 번영을 위해, 사람을 쉬지 않고 일하게 하는 문화로부터의 해방입니다. 노동이 생명을 살리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파괴하고 열매를 가로막는 것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하라 하시며, 그 안식을 통해 노동을 늘 거룩하게 하라, 곧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라.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되게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 됩니다. 우리는 앞서 말씀을 시작하며, 우리의 노동이 하나님의 심판이자 저주인 것 같은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인 것 같은지를 함께 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노동이 하나님의 심판과 같이 느껴진다면, 우리의 노동에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고자 노동을 하는 데, 이 땅에선 날마다 노동을 하다가 죽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산업재해로 죽어가도 우리는 그것에 무감하고 어쩔 수 없는 비용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노동은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리듬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생산과 편리한 소비의 리듬에 맞춰져 있습니다. 밤새 상하차 작업을 하고,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나르다가 무리해서 죽음을 맞이해도 우리는 이 시스템을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의 노동은 한 사람, 한 사람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로 효율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파견과 도급과 용역과 하청으로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해도,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해도 내 일이 아니면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수많은 엉겅퀴와 가시나무가 있고, 이로 인해 열매를 얻기는 커녕 생명을 잃는 노동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귀한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안식입니다. 가장 먼저, 우리는 문자 그대로 안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쉬지 못하는 노동문화, 쉼을 효율에 종속이시키는 노동문화를 우리는 바꾸어야 합니다. 쉼을 회복하는 것이 생명을 피워내는 첫번째 조건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안식의 의미를 되새겨 이 세상의 문화를 바꾸어야 합니다. 안식은 해방의 의미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풍요와 탐욕을 우상숭배를 하던 이집트는 끊없는 노예들의 노동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렇게 멈추지 않는 노동을 하면서도, 노예들은 계속해서 모든 것을 잃어야 했습니다. 풍요와 탐욕의 우상숭배가 바로 엉겅퀴와 가시덤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는 것이 바로 노동 회복의 전제 조건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문화와 체제를 지배하고 있는 근본적인 가치를 되돌아보아야 하며, 무엇을 우리가 가장 숭배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효율과 편리함과 쾌락과 성장만을 최우선순위로 놓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없앨 수 없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안식이 곧 저항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을 노동에 적용해야 합니다. 안식은 체제의 리듬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리듬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쉼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 나아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귀한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쉼은 노동자의 존엄성을 드러내어, 나아가 노동을 존엄하게 하는 일이 됩니다. 쉼은 우리의 피조물됨과 한계를 깨닫게 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게 합니다. 무한한 효율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비인격화된 노동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게 합니다. 안식을 통해 우리는 모든 엉겅퀴와 가시덤불에 저항 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쉼을 통해 노동의 조건을 만드는 일은 오늘날의 파업과 매우 유사한 성격이 있습니다. 파업은 노동자가 살아있는 인격체임을 드러냅니다. 안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노동과 노동하는 사람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안식의 저항적 의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노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의 통로이자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일은 생명을 살리는 노동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시며 사람 살리는 노동을 하셨습니다. 우리 또한 모든 시간, 모든 곳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일하며 살아갑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모든 노동이 값진 일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노동이 값진 일이 되기 위해선 우리에게 안식이 필요합니다. 안식에 담긴 우리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이 땅 가운데 이루어 가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복된 노동을 통해 생명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우상 숭배적인 문화와 체제에 저항하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생명과 사랑의 가치를 회복할 때, 우리의 노동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 귀한 창조와 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