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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산선

[기독공보] "냄새나는 사람들에게 오신 예수님"(23.11.24.)

Date
2023-12-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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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가 누이셨던 '구유'는 가난하고 냄새 나는 곳이다. 낮고 천한 곳에서 나는 냄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상을 찌푸리게 하고 속히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게끔 만든다. 예수님이 그곳에 전적인 도움이 필요('강보')한 아기로 계셨다(눅 2:7).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그 나신 '지역'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전해진다(눅 2:8-14). 이들은 예수님 가까이에 있었고, 구유가 있는 장소의 환경이나 조건 등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성경 말씀의 이 대목만 보더라도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고, 또 그렇게 쉽사리 서로 어울리게 된다. 물론 예외도 있다. '동방 박사들'처럼 특수한 사명이나 임무를 맡은 경우이다. 전자는 지역사회의 취약 계층(노숙인, 고시원이나 쪽방 거주자 등) 간, 후자는 시설 종사자와 이용자 간 서로 어울려 지내는 것에 비할 수 있다.

노숙인(露宿人) 사역을 하면서 지금까지도 쉽사리 적응되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냄새'이다. 시설 건물 전체에 감도는 노숙인 특유의 냄새가 있다. 신기하다. 적응은 안 되는데,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물론 개개인의 차원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 분들도 있고, 샤워를 해서 좋은 향이 나는 분들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어떤 이들은 담배 냄새에 찌들어 있다. 아주 드물지만, 5분도 채 안 돼 사람은 그 자리를 떠났는데 그가 지니고 있던 특이하고 강렬한 냄새는 몇 시간 동안 공간을 채우고 있다. 컨디션 난조에서 그 냄새를 맡으면 두통을 넘어 정신이 혼미해지기까지 하다. "냄새가 선을 넘는다"(영화 기생충 대사 중). "반지하 냄새야, 이사 가야 없어져" 하는 영화의 대사는, 이용자들이 시설에 계시는 동안 최대한 청결하도록 돕고 시설의 환경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경각심을 일깨웠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도 보다 나은 환경으로 이사 가야 한다.

'노숙인'은 1997년 IMF 경제위기로 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이다. 이후로 지금까지도 각종 삶의 위기로 노숙의 위기에 처하거나 노숙인이 되는 경우들이 있다. '노숙자' 호칭은 인권존중 차원에서 '노숙인'으로 그 용어가 정해졌다(2003년 보건복지부 공식).

몸에서 냄새나는 노숙인을 꺼려하듯이, '노숙인'이라는 용어 역시 사람들이 꺼리는 냄새로 작용한다(멸시의 언어).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대거 거리로 나오면서 생겨난 노숙인은 게으르고 더러운 냄새 나는 인생 낙오자가 아니다.

'노숙인,' 이 용어는 일례로 '주거취약자' 등의 포괄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사회적 취약계층) 중에서도 더욱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이 노숙인이기 때문이다. 용어가 주는 선입견, 낙인 효과 등은 노숙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인식을 강화하는 효과를 준다.

독일 교회(디아코니아)는 노숙인을 명확히 정의한다. '옵닥흐로저(Obdachlose)'는 그야말로 거리 노숙인을, '보눙스로저(Wohnungslose)'는 비주택거주자 등 주거 계약을 맺지 않은 상황에 처한 사람을 이른다. 이 두 개념은 서로 혼용되거나 동일하게 취급된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노숙인, 비주택거주자 등이 각 사정에 따라 서로의 영역을 오간다.

그 어느 누구든 사람의 몸에서 나는 냄새, 그가 처한 환경이 주는 냄새, 사회적 인식이 주는 차별과 냉대의 냄새. "섬기는 자"(눅 22:27)로 오신 예수님은 이 모두를 온몸으로 맞이하셨고 공생애 동안 극복하셨다. 노숙인은 '구유'와 같이 사회의 차갑고 냄새나는 한 구석에 있기에 '강보에 싸인 아기'처럼 많은 도움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렇게 오신 연민의 예수님이 지금도 그 자리에서 이들을 섬기시며 이들과 함께 계신다. 대림절을 맞는 추운 계절이 왔다. 우리를 섬기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섬기듯 노숙인의 따뜻한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김기용 목사 / 영등포산업선교회 햇살보금자리 시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