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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산선

[국민일보] “노동문제 사각지대 지원·지역주민과의 연대에 힘쓸 것”(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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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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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칸타타]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손은정 목사




손은정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가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산업선교의 새로운 방향성을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1958년 설립된 영등포산업선교회(산선·총무 손은정 목사)는 노동자들의 친구이자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감당했다. 특히 1970~1980년대 공장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몸으로 뛰었으며 노동자 교육 및 민주화운동의 본거지가 됐다. 시대가 바뀌면서 산선은 협동조합을 비롯해 이주민 도시노동자 노숙인 등 새로운 영역에서 다양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이 사역의 중심에 선 이가 손은정(54) 총무다.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산선 사무실에서 만난 손 목사는 “70~80년대에는 산선 사무실 앞 모텔에서 사복형사들이 사무실을 감시했을 정도였다. 선배들이 순교를 각오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나는 수월한 편”이라고 공을 돌렸다. 이어 “그동안 산선이 해왔던 노동조합 교육과 조직 등은 노동 관련 전문 기관과 단체들이 잘하고 있다. 이제 산선은 노동자 심리지원을 비롯해 산재나 돌봄 노동 등 노동문제의 사각지대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나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산업선교 패러다임 제시


어린 시절 그가 다닌 교회는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출옥 성도들이 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재건교단 소속이었다. 재건교단은 한국교회 최초의 여성 목사(최덕지 목사)를 배출한 교단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최덕지 목사님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할머니와 고모 등 신앙의 여성들에게 많이 배웠다”며 “그래서 자연스럽게 목회자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장로회신학대에 입학한 그는 1989년 학교 부지 이전 농성 당시 학생특별위원회 일원으로 나섰다가 제적을 당했다고 한다. 4년 뒤 부당 징계 투쟁 끝에 다시 복학하기까지 학생 운동을 경험하면서 소외되고 약한 자를 위한 사역에 눈을 떴다. “20대 초에 산선 봉사활동을 왔던 적이 있어요. 그때 문 앞에 적힌 말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이었는데 그걸 보고 ‘내가 그 현장에 있어야겠다’는 글을 적었던 게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메모에 발목을 잡힌 거죠.(웃음)”

졸업 후 독일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었던 기회를 포기하고 그는 2000년 산선에 들어와 산업선교를 시작했다. 당시 산업선교를 하려면 공장에서 6개월 일한 뒤 3개월은 전국 목회 현장 순례, 나머지 3개월은 인턴십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는 서울 중랑구 봉제 공장에서 옷을 접어 포장하는 일을 했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다 코를 풀면 파란색 실 빨간색 실 먼지가 나온다는 게 사실이었다”며 “주말까지 매일 10시간씩 서서 일하고 62만원을 받았는데 ‘이게 감옥이 아닌가’ 싶었다. 노동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체득했던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대 들어 산선은 노숙인 쉼터인 햇살보금자리를 시작으로 사회적협동조합 의료협동조합 먹거리생협 등의 사역을 진행했다. 70~80년대에는 사회 구조를 바꾸고 노조를 만드는 등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노동자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했다면, 노동자의 실생활을 바꾸고 지역 주민들과 연대하는 방식으로 사역 변화를 꾀한 것이다.

손 목사는 2009년 총무에 오른 후 협동조합 운영과 재정 건강성을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면서 갈등에 빠졌다고 했다. 협동조합도 하나의 사업체로서 이익이 나야 원활하게 성장하는데 부채가 쌓이다 보니 운영자 입장에서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제가 사업 운영의 주체가 되고 보니 왜 사장이 노조를 싫어하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제가 산업선교를 계속해도 될지 자괴감이 들 정도였어요. 결국 부채 해결을 어느 정도 마무리 짓고 더 이상 산업 현장에 머물 수가 없어 총무를 그만뒀죠.”


하나님의 관심은 늘 약자에게 있어


이후 그는 생각지 못한 ‘감정노동자’의 삶에 들어섰다. 암 투병을 하는 어머니의 비서 역할을 맡아 6년간 간병을 하면서 노동의 고통을 다시 깨달았다. “우리는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은연중에 ‘노력을 안 했을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돼요. 그런데 하나님은 일찍 온 일꾼과 나중 온 일꾼에게 모두 같은 임금을 주시는 분이시죠. 협동조합을 하며 느꼈던 생각은 나의 편협한 경험일 뿐 하나님은 약자에 대한 관심을 늘 놓지 않으셨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됐어요.”

4년 전 총무에 복귀한 그는 산업선교의 답은 노동현장에 있다는 생각으로 노동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젊은 청년들이 택배 상하차부터 육가공 공장, 단역 연기자 등 우리 사회 여러 노동 현장을 경험하면서 노동자에게 필요한 사역을 몸으로 느끼고 그것을 정책화하고 있다. 또 노숙인 자활을 비롯해 다양한 소그룹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산선이 좀 더 노동자의 편에 서서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서로 대화하고 이를 확장할 수 있는 그룹이 많아져야 하고 활동가들이 자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특별히 전체 노동자 가운데 41%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고충을 함께 해결해나가고 일터에서 한 사람도 업신여기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가는 것이 산선의 새로운 목표입니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