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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산선

[한겨레] 칼럼 - 조기현의 '몫' - 관계를 만드는 집수리(202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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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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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그 집은 떼어낼 곰팡이도 많고, 짐도 엄청 많았어. 그런 집 다시는 하기 싫어!”

3인 1조로 한 어르신 집에 수리를 갔다가 퇴근하는 길에 누군가 말한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어르신의 주거 환경이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 얘기하다가, 그 좋지 않은 환경을 수리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강조하다가, 도배와 장판을 싹 다 새로 하니 어르신이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되짚는다. 서로의 육체적 피로를 토로하는 말 속에서 ‘보람’이 배어 나왔다. 집수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노느매기’ 조합원들의 이야기다.

어떤 일에 기여하고 결과에 대한 만족을 음미하는 것, 그런 순간이 삶을 살아갈 의욕을 생기게 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기여할 수 있고 결과에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모두에게 이 보람이 ‘노느매기’ 될 수 없을까?

‘노느매기’는 하나의 몫을 여럿이 나눈다는 뜻이다. 협동조합은 그 뜻을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실현한다. 일자리에 참여하는 이들은 영등포에 있는 노숙인 일시보호시설에 머물던 중년 남성들이다. 일하고 싶지만 ‘써주는 곳’이 마땅치 않았던 이들이었다. 함께 모여서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들고 판매해왔다.

다들 ‘자립’하고 싶어서 시설에서 나왔지만, 너나없이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조합원들끼리 집수리를 배워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수전이나 등 교체, 간단한 도배는 스스로 해보자는 ‘필요’에 의한 배움이었다.

어느새 그 배움이 자신의 집을 고치는 걸 넘어 노인, 시각장애인, 1인 가구 등의 집수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됐다. 공공기관과 협약해서 집수리 사업을 시작했다. 다들 숙련 기간도 없이 덜컥 현장에 투입부터 됐다. 업자들은 한 번에 끝낼 집수리를 노느매기는 두 번, 세 번 만에 끝냈다. 완벽하지 못한 ‘서비스’였는데, 오히려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두 번, 세 번 찾아올 때마다 일하러 온 이들 옆에서 지난 생애를 들려주는 어르신도 있고, 일부러 찾아오도록 건전지 하나 갈 때도 매번 전화하는 어르신도 있다. 아이와 둘이 사는 젊은 여성은 집에 잔 고장이 날 때마다 불안하다며 의뢰를 했다. 집을 수리하는 ‘서비스’뿐 아니라, 집에 드나들면서 각자의 외로움과 불안을 해소하는 ‘관계’도 만들어졌다.

노느매기의 노동 강도는 다른 자활 일자리나 공공근로보다 힘들다. 지난날, 조합원들 대부분 자활 일자리, 공공근로, 실업급여를 돌아가며 신청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면 생계는 유지할 수 있지만, 나의 노동이 세상에 기여한다고 느끼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은 다르다. 내가 한 만큼의 보상이 따르고, 기술 숙련도도 점점 올라간다. 무엇보다 나의 일이 곧 세상을 돌보고 세상에 기여한다는 감각은 자존감을 높인다. 지금 조합원 대부분은 노숙하며 헤어졌던 가족들과 다시 연락하며 지낸다. 노느매기의 집수리 노동은 제공자와 수혜자 모두의 삶을 더 낫게 만든다. 실적을 중시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사실 공공기관의 집수리 사업 단가는 시장 단가에 한참을 못 미쳐서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돈벌이가 위태롭다. 노느매기의 노동은 지속 가능할까?

노느매기의 노동은 공공근로처럼 시혜적이지 않고,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기에 시장적이지도 않다. 직무 또한 자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삶에서부터 만들어졌다. 노느매기의 노동에서 대안 정책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국가가 최종고용자가 돼서 실업을 완전히 없애자는 일자리보장제,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에 소득을 보장하자는 참여소득이 어떤 일자리와 참여로 이뤄질지 상상해본다. 국가가 나서서 소득을 보장해야 하는 유의미한 노동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

조기현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