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훈련 최동빈 수료생(사진 가운데)과 김주역 수료생(사진 오른쪽). 노동훈련 1기 수료생인 이근복 목사와 손은정 목사가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홍인식 ‘일하는 예수회’와 ‘조지송 목사 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영등포산업선교회’ 주관한 기독청년노동훈련 수료 감사예배와 보고대회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도농사회처 후원으로 7월6일 총회100주년기념관 제2 연수실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노동훈련 수료 감사예배와 보고회는 김주역·최동빈 등 2명의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생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의 기간 동안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진행한 노동훈련에 참가해 수료한 것을 기념해 열린 것이다. 영등포산업선교회 노동훈련은 2002년을 끝으로 약 18년 동안 중단되었지만 이번 두 신학생의 수료로 거의 20년만에 재개되는 민중교회 노동훈련으로 산업선교회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20년만에 다시 배출한 노동훈련 수료생 수료 감사예배는 김희룡 목사(성문밖 교회 담임)의 인도로 시작되었다. 최동빈 수료생은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노동을 따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간다.”며 “하나님을 따르는 우리가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을 살피고 돌보는 일에 힘쓰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어 김주역 수료생도 “노동의 귀함과 사람의 소중함을 몸으로 배웠으니 절대로 잊지 않겠다.”며 “현장에서 배운 대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어 이근복 목사(조지송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는 시편 68:19과 시편 126:4-6을 본문으로 “씨 뿌리는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두 수료생을 격려했다. 이 목사는 “이번 신학생 두 분의 노동훈련은 별 것 아닌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참 귀한 사건”이라며 이는 “우리 총회의 산업선교와 사회선교에 희망을 일구는 씨앗인 까닭”이라고 강조했다. “울며 씨를 뿌리면 반드시 기쁨으로 거둔다는, 오늘 본문 시인의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되고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바란다.”라고 마무리했다. 예배 후 계속된 보고대회에서 오상열 목사(총회 도농사회처 총무)의 인사말, 송기훈 목사(영등포산업선교회) 훈련경과보고, 김주역, 최동빈(장로회신학대학교)훈련생 보고 박세론 총무(장로회청년회전국연합회), 장창원 목사(오산이주민노동자센터), 이상호 학장(한국폴리텍Ⅱ대학)의 격려사가 있었으며 훈련생을 위한 김경태 목사(대구 구민교회, (사)함께하는아시아생명연대 대표)의 장학금 전달식도 있었다. 노동현장의 상황을 직접 경험하며 배웠다 최동빈 수료생은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의 기간 동안 진행된 훈련 기간 동안 일자리를 구하여서 직접 노동을 하고, 노동 그 자체와 노동현장에서 느낀 점들을 정리한 노동훈련 최종 보고서 발표에서 “훈련 기간에 두 종류의 일, 즉 1월말부터 3월 중순까지는 쿠팡이츠 배달 파트너로서 음식 배달을 했고, 3월말부터 6월 말까지는 CJ대한통운에서 택배 분류...
2021.09.27
민중신학의 태두 고 서남동 교수님에 의하면 영등포산업선교회(이하 영산)는 새로운 교회입니다. 영산은 1958년에 예장통합 전도부의 결의로 경기노회가 한국 최대의 경공업단지 영등포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선교회입니다. 기업주의 협력을 받은 공장 예배와 평신도노동자와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교육하는 ‘산업 전도’를 하다가, 산업사회와 노동자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하여 노동자들의 권익과 주체적인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산업선교’로 발전하였습니다. 당시 수출주도형 경제개발정책으로 붕괴된 농촌에서 상경한 노동자 대부분은 10대들로 변변한 휴일도 없이 저임금과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며 수당과 퇴직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소그룹운동은 ‘공돌이, 공순이’라고 천시당하던 노동자들을 당당하게 했고, 노조 결성과 어용노조 민주화운동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소그룹은 교양과 취미활동, 음식만들기 등을 하며 틈틈이 근로기준법 등을 배우는 따스한 작은 공동체였습니다. 영산은 한국노총이 유신체제를 지지하며 노동문제를 외면할 때 노동자들의 보금자리였고, 민주노동운동의 튼실한 기초를 놓았습니다. 조지송 목사님과 인명진 목사님의 뛰어난 지도력과 희생, 노동자들과 실무자들의 헌신으로 감리교 인천산업선교회와 쌍벽이 되어 노동운동의 발전과 노동문제를 교회와 사회에 알리는 가교가 되었고 세계교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민중신학자 권진관 교수님(성공회대 명예교수)은 저서 <예수, 민중의 상징. 민중, 예수의 상징>(동연)에서 산업선교가 민중신학의 태동에 영향을 주었다고 썼습니다. “민중신학이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민중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소수 기독교인들의 실천적 활동이 있었다. 민중신학은 그 실천을 신학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에서 태동된 것이다. 그 실천은 산업선교에 종사했던 목회자, 평신도, 그리고 노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여기에 더해서 기독학생들이 동참하였다.”(375쪽) 한편 산업선교는 한국교회의 사회선교를 열었고 교회성장에도 기여하였다고 평가받습니다. 제가 한국기독교회협의회(NCCK)의 교육훈련원장이던 2011년, 목회자모임에 서울대 김병현 교수를 초청하여 한국교회의 신뢰도 문제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강연 후 제가 영산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 교수는 이런 증언을 했습니다. 자기가 연구해보니, 가난한 이들을 헌신적으로 섬긴 산업선교 등 민중선교가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여 이 토대에서 70-90년대 한국교회가 급성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노동운동사에서는 산업선교가 민주노동운동의 그루터기였다는 점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장숙경 박사의 <산업선교, 그리고 70년대 노동운동>(도서출판 선인)은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산업선교는 1960-1970년대 한국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노동문제와 노동운동에 가장 깊게 관여해 큰 영향을 미친 노동운동단체로, 한국 민주노동운동의 시원(始元)을 논한 때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이다. 산업선교는 그동안 개신교의 선교단체였다는 이유로...
2021.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