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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산선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 노동 선교, 민주화 운동의 요람'은 영등포산업선교회(산업선교회·손은정 총무)의 오랜 역사를 설명하는 수식어다. 경공업 산업 단지가 모여 있던 영등포에서 시작해 산업 선교의 기치를 올리며 독재 정권과 싸워 온 산업선교회는 올해로 설립 63주년을 맞았다.   뒤로멈춤앞으로 산업선교회가 처음 시작했을 때 '영등포'는 지역 공단 노동자들을 상징했다. 하지만 지금 영등포 일대의 모습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산업 단지는 이미 수도권 외곽으로 전부 빠져나갔고 그 자리를 아파트, 대형 상업 시설 등이 메꿨다. 영등포 문래동 일대는 이제 느낌 있는 '맛집' 밀집 구역으로 젊은이들에게 더 유명하다. '산업 선교'의 대상이었던 공단 노동자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산업선교회는 그 자리에서 사역을 이어 왔다. 1970~1980년대 활동의 정점을 찍은 후, IMF 사태 때는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손을 잡았고 이후로도 협동조합 조직, 노동자 심리 상담, 투쟁 현장 탐방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명맥을 유지했다. 해마다 '노동 주일' 예배를 주관하는 것도 산업선교회 역할이었다. 산업선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신정호 총회장)은 4월 넷째 주일을 노동 주일로 지킨다. 주제에 맞게 총회장 목회 서신을 발표하고, 예배 모범 서식도 배포하지만 이를 지키는 교회는 사실 많지 않다. 노동 주일 예배는 산업선교회와 총회 관계자들만 참석하는 연례 '행사'가 됐다. 올해는 조금 달랐다. 산업선교회는 올해 노동 주일을 앞두고 '노동 주일 설교문'과 '노동 주일 성도의 약속 10가지'를 공모했다. 일반 목회자와 교인이 지금 이 시대 노동의 의미를 고민해 보면 좋겠다는 의도로 시작한 일이다. 짧은 준비·홍보 기간에 비해 꽤 많은 이가 지원했다. 당선자들은 자신이 작성한 설교문을 교회 공동체와 함께 나누며 노동 주일의 의미를 되새겼다. 산업선교회는 이번 공모전 기획과 같이 사역 방향의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일단 40년 넘은 건물의 리모델링 사업이 진행 중이다. 리모델링이 완료되면 건물 3~4층에는 영등포구가 운영하는 노동자 종합 지원 센터가 들어오고, 산업선교회 역사 전시관도 들어선다. 과거 산업 선교 활동을 돌아보며 지금 이 시대의 '영등포'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드러내는 작업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산업선교회를 이끄는 총무 손은정 목사는 1999년 신대원을 졸업하고 바로 기독교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공장에서 노동 훈련을 하고, 산업선교회 인턴으로 시작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산업선교회 총무로 활동했다. 손 목사는 "내가 처음 왔을 때도...
2021.09.27
민중신학의 태두 고 서남동 교수님에 의하면 영등포산업선교회(이하 영산)는 새로운 교회입니다. 영산은 1958년에 예장통합 전도부의 결의로 경기노회가 한국 최대의 경공업단지 영등포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선교회입니다. 기업주의 협력을 받은 공장 예배와 평신도노동자와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교육하는 ‘산업 전도’를 하다가, 산업사회와 노동자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하여 노동자들의 권익과 주체적인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산업선교’로 발전하였습니다. 당시 수출주도형 경제개발정책으로 붕괴된 농촌에서 상경한 노동자 대부분은 10대들로 변변한 휴일도 없이 저임금과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며 수당과 퇴직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소그룹운동은 ‘공돌이, 공순이’라고 천시당하던 노동자들을 당당하게 했고, 노조 결성과 어용노조 민주화운동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소그룹은 교양과 취미활동, 음식만들기 등을 하며 틈틈이 근로기준법 등을 배우는 따스한 작은 공동체였습니다. 영산은 한국노총이 유신체제를 지지하며 노동문제를 외면할 때 노동자들의 보금자리였고, 민주노동운동의 튼실한 기초를 놓았습니다. 조지송 목사님과 인명진 목사님의 뛰어난 지도력과 희생, 노동자들과 실무자들의 헌신으로 감리교 인천산업선교회와 쌍벽이 되어 노동운동의 발전과 노동문제를 교회와 사회에 알리는 가교가 되었고 세계교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민중신학자 권진관 교수님(성공회대 명예교수)은 저서 <예수, 민중의 상징. 민중, 예수의 상징>(동연)에서 산업선교가 민중신학의 태동에 영향을 주었다고 썼습니다. “민중신학이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민중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소수 기독교인들의 실천적 활동이 있었다. 민중신학은 그 실천을 신학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에서 태동된 것이다. 그 실천은 산업선교에 종사했던 목회자, 평신도, 그리고 노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여기에 더해서 기독학생들이 동참하였다.”(375쪽) 한편 산업선교는 한국교회의 사회선교를 열었고 교회성장에도 기여하였다고 평가받습니다. 제가 한국기독교회협의회(NCCK)의 교육훈련원장이던 2011년, 목회자모임에 서울대 김병현 교수를 초청하여 한국교회의 신뢰도 문제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강연 후 제가 영산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 교수는 이런 증언을 했습니다. 자기가 연구해보니, 가난한 이들을 헌신적으로 섬긴 산업선교 등 민중선교가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여 이 토대에서 70-90년대 한국교회가 급성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노동운동사에서는 산업선교가 민주노동운동의 그루터기였다는 점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장숙경 박사의 <산업선교, 그리고 70년대 노동운동>(도서출판 선인)은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산업선교는 1960-1970년대 한국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노동문제와 노동운동에 가장 깊게 관여해 큰 영향을 미친 노동운동단체로, 한국 민주노동운동의 시원(始元)을 논한 때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이다. 산업선교는 그동안 개신교의 선교단체였다는 이유로...
2021.09.27
1958년 영등포의 잿빛 하늘아래 십자가의 복음을 들고 들어간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영등포산업선교회(총무 신승원 목사, 이하 선교회)’라는 명칭을 붙잡고 도시의 언저리로 소외된 삶을 살아가야 했던 공장노동자들과 함께 삶을 나누었다. 이제 그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창립 50년을 맞았다. 노동자들의 안식처 선교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신승원 목사는 “이곳(선교회)이 7~80년대에는 유일하게 숨통을 틀 수 있는 공간이었다”면서 사람들이 한번 모이면 건물을 가득 채웠던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을 기억한다. 선교회는 50주년을 맞아 17살에 처음 선교회에 참여했었던 여성 노동자 두 명의 기념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50살이 넘은 지금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 명은 지금 작은 장갑을 만드는 공장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는 이랜드 노동자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한 삶과 이랜드 노조 설립에 참여했던 한 여성 노동자의 33년의 지난 이후의 삶이 영상에 담겼다. 민주노총 지도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기독교인은 이렇게 말한단다. “선교회는 노동자의 안식처라는 기억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뒤로한 발자국 내어 디딛기 선교회는 90년대 중반 이후 다양한 우리 사회의 변화 속에서 노숙인을 위한 사회선교활동과 먹거리 협동운동, 의료생활협동조합 등을 통한 지역사회 공동체를 이끌어 왔다. 현재 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은 300여 명, 신용협동조합은 450여 명, 의료생활협동조합은 1000여 명 정도이다. 또 국제 연대를 통해 CCA(아시아기독교협의회)와 아시아 디아코니아 도시농어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훈련을 받고 자국으로 돌아간 사회선교 활동가는 약 70여 명. 신 총무는 이런 활동 등과 함께 보다 짜임새 있는 생명평화운동을 전개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선교회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인 노동자 지원 운동 역시 비정규직의 어려움 등을 한국교계에 알리고 한국교회가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그 역할을 다한다는 생각이다. 바위 위에 이름 새기기 이제 산업선교회는 50주년을 맞아 ‘지역·협동으로 아시아와 연대하라!’를 주제로 행사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11월9일 <산업선교 50주년 희년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선교회는 5월 50주년 희년 역사심포지엄을 갖고 ‘산업선교 10년, 침체기였는가? 지평확장기였는가’를 주제로 지난 10년간의 산업선교에 대한 재평가의 시간을 마련했다. 또 10월25일에는 선교회를 거쳐 갔던 선배 목회자들과 형제·자매들을 초청해 회상의 밤을 함께 하고, 1000여 명의 이름을 동판에 새기려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어떤 이들은 산업선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들을 떠올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2021.09.20